디시인사이드 김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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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디시인사이드를 처음 알았을때.. 형식적인 것이 아닌 솔직함이 있었고, 자유가 있었다.
누구나 디시에 와서 놀다보니 험한말들이 오고가고 각종사건사고가 있었지만.. 
취미를 함께 공유하고, 친해지면 오프라인에서 만날수 있는 유저들과 소통하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디시인사이드의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70억 횡령사건....
처음에는 의심했지만.. 오랫동안 디시질 해본사람들은 알고있듯이..
횡령할 사람이 아니며, 큰 욕심이 없다..
(IC코퍼레이션 주식이 휴지조각이 된 사람들은 안타깝지만...)
다만, 디시인사이드를 더 키우기 위해서 (주)IC코퍼레이션을 인수하게 되었고, 이런 사건에 휘말렸다....
남 등쳐먹는 사람들은 호의호식하며 사는데...
정말..순진한 사람은 대한민국에 살수 없다..
참..안타까운 사람이다..


탄원서

존경하는 판사님,

  저는 현재 (주)아이씨코퍼레이션의 횡령 및 배임 건으로 조사 중인 디시인사이드 김유식 대표의 아내 박유진입니다. 저와 남편은 디시인사이드가 만들어졌던 2000년 1월, 제가 디시인사이드에 입사하며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디시인사이드 창립 멤버로 지금까지 디시인사이드의 직원으로 함께 일을 하고 있으며, 남편이 지금의 디시인사이드를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그 누구 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시 남편은 아현동 산자락에 위치한 작고 낡은 아파트에서 직원 2명과 함께 조그만 개인 사업을 운영하였습니다. 그때 처음 만들어진 사이트가 지금의 디시인사이드입니다. 마루에 놓여진 컴퓨터 3대가 전부인, 회사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사업체였지만, 남편과 직원들에게는 꿈이자 희망이었습니다. 벤처 투자 열풍이 사라질 무렵, 제가 입사한 지 2개월 만에 운 좋게도 투자를 받을 수 있었고 그해 3월, 회사는 법인 전환을 하게 되었습니다. 투자 회사에 함께 갔던 저는 투자를 받아 나오는 남편의 가슴 벅찬 그 환한 웃음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투자받은 금액으로 사무실을 넓힐 수 있었고 직원들도 10여 명으로 늘어나는 등 디시인사이드는 점차 회사다운 모습을 갖추게 됐습니다. 사이트가 점차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매출이 증가할수록 전 직원들은 새벽까지 일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회사가 성장하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 뒤편에는 ‘사장’이라는 권위적인 모습 없이 직원과 똑같은 모습으로 새벽까지 함께 일을 하고 술잔을 기울이며 회사의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꿈을 안겨줬던 ‘김유식’이란 사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어느 누구보다 직원들을 가족처럼 여겼고, 외부에서 어떤 귀한 선물이 들어와도 여느 회사처럼 사장 개인이 취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욕심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남편이 회사에 갖고 있는 애정은 단순한 사장, 그 이상입니다. 회사가 운영하는 사이트에 올라오는 수천 여 개의 글을 보며 관리를 하고, 그 글에 일일이 댓글을 남기며 사이트 이용자와 소통하는 모습은 사이트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저 역시 남편과 함께 일을 하며 그가 갖고 있는 일에 대한 열정과 회사에 대한 애정, 사이트 이용자와 직원들에 대한 배려심과 정직한 모습에 반해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남편이 집에 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옷을 갈아입는 것도, 손을 씻는 것도 아닌 컴퓨터를 켜고 회사 사이트를 열어보는 것입니다. 사이트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이용자들의 불만은 없는지 직접 살펴보고 나서야 자신의 시간을 갖는 사람입니다.

  디시인사이드는 그렇게 그의 애정과 열의, 젊은 날을 다 바쳐 만든 곳입니다. 남편이 건설회사였던 (주)IC코퍼레이션을 인수하면서 바란 것은 오직 디시인사이드를 더 키울 수 있다는 그 믿음 하나였습니다. 늘어나는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해 서버를 빌려쓰고 있는 상황에서 사이트를 더 키우기 위해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었고, 투자의 조건으로 인수하게 된 회사가 (주)IC코퍼레이션이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상장사를 인수했다고 큰 돈을 번 것처럼 얘기했지만, (주)IC코퍼레이션을 인수한 후 단 한번도 풍족한 생활을 해 본 기억이 없습니다. 지금까지도 재산이라고는 신혼집이었던 문래동에 있는 1억 6천만 원의 전셋집이 전부일 정도로 인수 전과 후, 정말 똑같은 생활을 해왔습니다. 남편 역시 검소한 사람이라 평소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자가용도 10년 전에 처음 산 차를 지금까지 타고 있으며, 바지 하나도 십년을 입는 사람입니다. 여느 대표라면 취미생활로 한번쯤 해봤을 골프채 한번 잡아본 적이 없고, 취미라는 게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컴퓨터 게임이 다일 정도로 인터넷 외의 일에는 관심도 욕심도 없습니다.

  남편은 공과 사가 분명한 성격으로 저와 밥을 먹을 때도 법인카드 한번 써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성격의 남편은 (주)IC코퍼레이션의 임원들이 회사법인 카드로 와이프의 명품 핸드백을 사고 술 값으로 몇 천만 원씩 쓰고 다니는 것을 얘기하며 뭔가 잘 못된 것 같다는 얘기를 누차 해왔습니다. 법인 카드의 내역은 지금이라도 확인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주)IC코퍼레이션을 인수했던 1년 동안 남편의 흰머리는 확연히 눈에 띌 정도로 늘었습니다. 남편이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순간들, 잘 못된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남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며 남편은 회사를 인수했던 스스로를 원망하여 어떻게든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밤새 잠도 이루지 못하고 한 숨만 쉬는 날들을 보냈습니다. 귀가 얇아 남의 말에 쉽게 넘어가고 정이 많아 모질지 못한 남편의 성격이 잘 못이라면 잘 못일까요?

  그리고 결국 이렇게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주)IC코퍼레이션으로 걱정을 할 때도 저는 남편이 누구보다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성실히 회사만을 위해 일했던 사람인 것을 알고 있기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엉뚱한 사람들의 배를 불린 채 힘들게 키워온 디시인사이드는 한 순간에 사라져버리고, 서버 비용과 직원들에게 지급된 월급은 횡령금으로 둔갑해 버렸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의 죄까지 다 남편이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듣고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저는 넉넉한 집안에서 자라지는 못했지만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친구들의 메이커 옷을 부러워 한 적도, 그런 가정형편을 두고 부모님께 불평한 번 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부모님께 너무나 죄송스럽지만 넉넉한 집에서 태어나지 못해 남편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에 처음으로 눈물을 흘립니다. 건설이라고는 일절 모르는 남편을 바지사장으로 앉혀두고 불법적으로 돈을 갈취한 사람들은 큰 돈을 들고 해외로 도피해 호의호식할 때, 남편은 변호사 비를 댈 돈도 없어 검찰 조사 시에 혼자 응해야했습니다. 남편의 억울함을 알기에 담담히 기다렸지만, 인터넷 유명세를 치루 듯 남편은 어느새 사람들에게 70억 횡령범으로 낙인찍혔고 남편은 그에 대한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 남편을 위해 고작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결혼 전부터 집 장만을 위해 모았던 적금을 털어 변호사비 일부를 대주는 게 다임이 마음 아플 뿐입니다. 뛰어난 언변도, 글 실력도 안돼 남편의 상황을 제대로 변호할 능력도 안 되지만 남편의 검소함과 착실함, 이것만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인터넷 사업을 하며 누구보다 자신이 운영하는 사이트를 사랑하고 그것밖에 몰랐던, 알지도 못하는 분야에 뛰어들어 기업사냥꾼에게 당할 수밖에 없었던 남편의 무지함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남편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크게 뉘우치고 죄 값을 받겠다고 합니다. 남편이 하지 않은 죄까지 억울하게 받게 되는 일만은 없도록 부디 법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최대한의 선처를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바쁘신 중에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디시인사이드  박유진 배상

=================================================================================================== 디시인사이드 박주돈 부사장 http://gallog.dcinside.com/jdp70

김현국 이사 http://blog.naver.com/pctoolsay?Redirect=Log&logNo=20066026583

디시인사이드 김근태 대리 http://gallog.dcinside.com/redux8080

디시인사이드 김선옥 팀장 http://gallog.dcinside.com/mulderwife/2123632796


2009년 10월 22일 공지사항에 올라와 있는 글.

http://durl.me/6mba

안녕하세요? 김유식입니다.

저는 지금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서울구치소에서 수형생활을 하며 항소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구속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에 기회가 된다면 말씀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다른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10월 6일은 디시인사이드가 생겨난 지 10주년이 되던 날이었습니다. 파란의 전신인 한국통신하이텔의 콘텐츠 제공으로 처음 시작한 디시인사이드는 우연한 기회에 만들어진 사이트입니다. '90년대 중반 노트북컴퓨터 동호회에서 시삽을 했었던 저는 '99년 여름 한 하이텔 담당자의 도움으로 월 100만원씩 받기로 하고 노트북에 대한 정보 제공사이트를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이때 담당자는 또 다른 정보 제공 할만한 아이템이 없느냐고 물었고 저는 잠시 생각하다가 디지털카메라에 대한 것이 좋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두어 달 정도 마포구 대흥동의 한 상가에서 야전침대를 놓고 노트북과 디지털카메라에 대한 사양표 정리를 마치고 첫 서비스를 개시하던 날이 생각납니다. 고정 IP 주소가 없어 근처 PC방에서 업로드를 했던 일, 서비스개시 두시간만에 첫 질문이 올라와 기쁨에 넘쳐 답변게시물을 달던 일 등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서비스개시하고 얼마 안 되어 보증금 오백만 원에 월 오십만 원씩 내기로 하고 아현동의 다 쓰러져가는 아파트로 옮길 수 있었고 적으나마 몇 명의 직원들을 채용하였습니다. 그 중의 한 직원은 지금 저의 아내가 되어있고 당시 같이 일했던 직원들도 아직 디시인사이드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지난 10년 동안 디시인사이드에서는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회사의 위치는 아현동에서 구로공단역으로, 문래동을 거쳤다가 논현동에서 7년을 있었고 지금은 신도림 테크노마트로 이전해 있습니다. 100MB의 하드디스크를 쓰던 웹호스팅 시절을 지나 한 대, 두 대 서버를 구매하게 되고 어느덧 200여대의 서버로도 부족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지난 3월에 있었던 DDOS 공격으로 일부 트래픽을 잃기도 했지만 아직도 서버속도는 상당히 느린 상태입니다.

비회원제로 아무나 들어와서 원하는 글을 쓰게 하자는 초기의 운영방식은 많은 이용자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정부의 제한적 본인확인제 정책으로 로그인 또는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만 아직도 비회원제에 대한 제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2002년 월드컵을 전후로 디시인사이드의 방문자수와 페이지뷰가 급격히 늘었고 개벽이, 개죽이 등 각종 "합성필수요소"들의 등장과 독특한 리플문화로 인해 이른바 "아햏햏" 문화의 생성과 "디시폐인"들이 생기면서 디시인사이드는 나름대로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습니다. 넘쳐나는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해 하나포스와 동아닷컴의 신세를 진적도 있고, 3년간 야후코리아의 서버를 빌려 쓴 적도 있습니다. 5억원으로 시작했던 자본금은 30억원으로 늘었고 적으나마 5년 연속으로 순이익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여러 이용자들과 더불어 훌륭한 직원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저에게는 큰 행운이었습니다. 적은 임금과 열악한 근무환경에서도 묵묵히 맡은바 업무를 충실히 해주었던 박주돈 부사장 외 여러 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지난 10년간 디시인사이드에서는 서울과 북경에서 삼백여명의 직원들이 거쳐 갔습니다. 경력을 쌓아 전직한 직원들도 있고, 결혼 후 출산하여 가정주부가 된 직원들도 있습니다.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어 직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협력업체분들께도 인사의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저와 디시인사이드를 도와주셨던 많은 협력업체 여러분들. 일일이 찾아뵙지 못하고 인사 못 드리는 점을 너그럽게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찾아뵙고 인사 올리겠습니다.

한 가지 제가 진정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금까지 디시인사이드는 한번도 서버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빌려 쓰기도 하고 투자를 해주겠다는 사기꾼들에게 속아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디시인사이드는 상태가 썩 좋지는 않습니다만 여러분들의 꾸준한 사랑 바라겠습니다.

디시인사이드 이용자 여러분!

저는 지난 10년간의 주식회사 디시인사이드 대표의 자리에서 물러나 이제 여러분의 곁을 떠나야합니다. 그러나 꼭 언젠가 여러분들과 다시 함께할 날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지난 10년간 여러분들의 사랑으로 저는 디시인사이드의 대표자로서 결코 잊을 수 없는 30대를 보냈습니다.

디시인사이드를 방문해 주셨던 여러분들, 협력업체분들, 그리고 직원들 모두에게(개죽이를 포함하여) 다시금 깊은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키보드가 아닌 편지지에 쓰는 것이라 두서가 없는 점 이해하여 주시고 모든 이용자 여러분 항상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같은 시대를 보내는 네티즌이어서 고마웠고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김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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