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디시인사이드를 처음 알았을때.. 형식적인 것이 아닌 솔직함이 있었고, 자유가 있었다.
누구나 디시에 와서 놀다보니 험한말들이 오고가고 각종사건사고가 있었지만..
취미를 함께 공유하고, 친해지면 오프라인에서 만날수 있는 유저들과 소통하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디시인사이드의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70억 횡령사건....
처음에는 의심했지만.. 오랫동안 디시질 해본사람들은 알고있듯이..
횡령할 사람이 아니며, 큰 욕심이 없다..
(IC코퍼레이션 주식이 휴지조각이 된 사람들은 안타깝지만...)
다만, 디시인사이드를 더 키우기 위해서 (주)IC코퍼레이션을 인수하게 되었고, 이런 사건에 휘말렸다....
남 등쳐먹는 사람들은 호의호식하며 사는데...
정말..순진한 사람은 대한민국에 살수 없다..
참..안타까운 사람이다..
탄원서
존경하는 판사님,
저는 현재 (주)아이씨코퍼레이션의 횡령 및 배임 건으로 조사 중인 디시인사이드 김유식 대표의 아내 박유진입니다. 저와 남편은 디시인사이드가 만들어졌던 2000년 1월, 제가 디시인사이드에 입사하며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디시인사이드 창립 멤버로 지금까지 디시인사이드의 직원으로 함께 일을 하고 있으며, 남편이 지금의 디시인사이드를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그 누구 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시 남편은 아현동 산자락에 위치한 작고 낡은 아파트에서 직원 2명과 함께 조그만 개인 사업을 운영하였습니다. 그때 처음 만들어진 사이트가 지금의 디시인사이드입니다. 마루에 놓여진 컴퓨터 3대가 전부인, 회사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사업체였지만, 남편과 직원들에게는 꿈이자 희망이었습니다. 벤처 투자 열풍이 사라질 무렵, 제가 입사한 지 2개월 만에 운 좋게도 투자를 받을 수 있었고 그해 3월, 회사는 법인 전환을 하게 되었습니다. 투자 회사에 함께 갔던 저는 투자를 받아 나오는 남편의 가슴 벅찬 그 환한 웃음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투자받은 금액으로 사무실을 넓힐 수 있었고 직원들도 10여 명으로 늘어나는 등 디시인사이드는 점차 회사다운 모습을 갖추게 됐습니다. 사이트가 점차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매출이 증가할수록 전 직원들은 새벽까지 일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회사가 성장하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 뒤편에는 ‘사장’이라는 권위적인 모습 없이 직원과 똑같은 모습으로 새벽까지 함께 일을 하고 술잔을 기울이며 회사의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꿈을 안겨줬던 ‘김유식’이란 사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어느 누구보다 직원들을 가족처럼 여겼고, 외부에서 어떤 귀한 선물이 들어와도 여느 회사처럼 사장 개인이 취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욕심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남편이 회사에 갖고 있는 애정은 단순한 사장, 그 이상입니다. 회사가 운영하는 사이트에 올라오는 수천 여 개의 글을 보며 관리를 하고, 그 글에 일일이 댓글을 남기며 사이트 이용자와 소통하는 모습은 사이트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저 역시 남편과 함께 일을 하며 그가 갖고 있는 일에 대한 열정과 회사에 대한 애정, 사이트 이용자와 직원들에 대한 배려심과 정직한 모습에 반해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남편이 집에 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옷을 갈아입는 것도, 손을 씻는 것도 아닌 컴퓨터를 켜고 회사 사이트를 열어보는 것입니다. 사이트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이용자들의 불만은 없는지 직접 살펴보고 나서야 자신의 시간을 갖는 사람입니다.
디시인사이드는 그렇게 그의 애정과 열의, 젊은 날을 다 바쳐 만든 곳입니다. 남편이 건설회사였던 (주)IC코퍼레이션을 인수하면서 바란 것은 오직 디시인사이드를 더 키울 수 있다는 그 믿음 하나였습니다. 늘어나는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해 서버를 빌려쓰고 있는 상황에서 사이트를 더 키우기 위해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었고, 투자의 조건으로 인수하게 된 회사가 (주)IC코퍼레이션이었습니다. 주변에서는 상장사를 인수했다고 큰 돈을 번 것처럼 얘기했지만, (주)IC코퍼레이션을 인수한 후 단 한번도 풍족한 생활을 해 본 기억이 없습니다. 지금까지도 재산이라고는 신혼집이었던 문래동에 있는 1억 6천만 원의 전셋집이 전부일 정도로 인수 전과 후, 정말 똑같은 생활을 해왔습니다. 남편 역시 검소한 사람이라 평소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자가용도 10년 전에 처음 산 차를 지금까지 타고 있으며, 바지 하나도 십년을 입는 사람입니다. 여느 대표라면 취미생활로 한번쯤 해봤을 골프채 한번 잡아본 적이 없고, 취미라는 게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컴퓨터 게임이 다일 정도로 인터넷 외의 일에는 관심도 욕심도 없습니다.
남편은 공과 사가 분명한 성격으로 저와 밥을 먹을 때도 법인카드 한번 써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성격의 남편은 (주)IC코퍼레이션의 임원들이 회사법인 카드로 와이프의 명품 핸드백을 사고 술 값으로 몇 천만 원씩 쓰고 다니는 것을 얘기하며 뭔가 잘 못된 것 같다는 얘기를 누차 해왔습니다. 법인 카드의 내역은 지금이라도 확인하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주)IC코퍼레이션을 인수했던 1년 동안 남편의 흰머리는 확연히 눈에 띌 정도로 늘었습니다. 남편이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순간들, 잘 못된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남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며 남편은 회사를 인수했던 스스로를 원망하여 어떻게든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밤새 잠도 이루지 못하고 한 숨만 쉬는 날들을 보냈습니다. 귀가 얇아 남의 말에 쉽게 넘어가고 정이 많아 모질지 못한 남편의 성격이 잘 못이라면 잘 못일까요?
그리고 결국 이렇게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주)IC코퍼레이션으로 걱정을 할 때도 저는 남편이 누구보다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성실히 회사만을 위해 일했던 사람인 것을 알고 있기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엉뚱한 사람들의 배를 불린 채 힘들게 키워온 디시인사이드는 한 순간에 사라져버리고, 서버 비용과 직원들에게 지급된 월급은 횡령금으로 둔갑해 버렸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의 죄까지 다 남편이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듣고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저는 넉넉한 집안에서 자라지는 못했지만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친구들의 메이커 옷을 부러워 한 적도, 그런 가정형편을 두고 부모님께 불평한 번 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부모님께 너무나 죄송스럽지만 넉넉한 집에서 태어나지 못해 남편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에 처음으로 눈물을 흘립니다. 건설이라고는 일절 모르는 남편을 바지사장으로 앉혀두고 불법적으로 돈을 갈취한 사람들은 큰 돈을 들고 해외로 도피해 호의호식할 때, 남편은 변호사 비를 댈 돈도 없어 검찰 조사 시에 혼자 응해야했습니다. 남편의 억울함을 알기에 담담히 기다렸지만, 인터넷 유명세를 치루 듯 남편은 어느새 사람들에게 70억 횡령범으로 낙인찍혔고 남편은 그에 대한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 남편을 위해 고작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결혼 전부터 집 장만을 위해 모았던 적금을 털어 변호사비 일부를 대주는 게 다임이 마음 아플 뿐입니다. 뛰어난 언변도, 글 실력도 안돼 남편의 상황을 제대로 변호할 능력도 안 되지만 남편의 검소함과 착실함, 이것만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인터넷 사업을 하며 누구보다 자신이 운영하는 사이트를 사랑하고 그것밖에 몰랐던, 알지도 못하는 분야에 뛰어들어 기업사냥꾼에게 당할 수밖에 없었던 남편의 무지함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남편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크게 뉘우치고 죄 값을 받겠다고 합니다. 남편이 하지 않은 죄까지 억울하게 받게 되는 일만은 없도록 부디 법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최대한의 선처를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김유식 대표와 저는 고등학교 동창으로 사회 진출 이전부터 알고 지낸 벗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에 있기도 하였고 사회에 나와서는 2000년부터는 김유식 대표가 설립한 디시인사이드에 제가 입사하여 10여년을 같이 일하였습니다. 이러한 관계로 어느 누구보다 김유식 사장에 대해서는 제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아이씨코퍼레이션을 인수하는 과정에서부터 김유식 대표가 ㈜아이씨코퍼레이션 대표로 있으면서 겪었던 고통들에 저에게 소상하게 얘기하고 상의하였기 때문에 그간 어떤 문제들이 있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제가 김유식 대표와 10년 동안을 일하면서 다른 무엇보다도 김유식 대표를 친구이자 직장 동료로서 존경했던 것 중 하나가 디시인사이드라는 회사 대주주이자 대표이사이로 있던 시절에도 금전 관계에 대해서는 항상 공과 사를 정확히 하였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제 사회생활을 한지 15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 동안 많은 대표이사나 대주주들이 회사의 자금을 마치 자기의 개인 자금인 것 처럼 유용하다 구속이 되고 회사가 결국 문을 닫는 사례들을 주변에서 실지로 보았고 언론에서도 보았습니다. 만약 김유식 대표가 이런 류의 사람이었다면 절대 10년간을 같이 일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김유식 대표는 10년간을 대표로 있었지만 본인 명의 뿐만 아니라 차명으로라도 집 한 채 가져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2000년도에 구입한 차를 아직까지도 애지중지하면서 보유하고 있으며, 회사 출퇴근 시에도 항상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검소한 사람입니다. 또한 해외 출장을 갈때에도 항상 이코노미 좌석만을 이용하고 회사 비용을 아끼기 위해 값 싼 게스트하우스 같은 곳을 이용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아이씨코퍼레이션의 자금과 관련해서 횡령 혹은 다른 방법으로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는 등의 죄를 지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디시인사이드가 ㈜아이씨코퍼레이션을 인수한 것이 2006년 11월이었습니다. 당시 주변에 지인들은 김유식대표가 코스닥 상장사의 대표이사가 되고 ㈜아이씨코퍼레이션에서 법인차가 나오는 것 만을 보고 무슨 큰 돈이나 번 것처럼 얘기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김유식 대표가 ㈜아이씨코퍼레이션 대표이사가 된 이후로 ㈜아이씨코퍼레이션의 대표로서 월급을 받은 이외에 ㈜아이씨코퍼레이션에서 어떤 금전적인 혜택을 받은 것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아이씨코퍼레이션 인수로 디시인사이드는 거의 문을 닫을 지경에까지 갔었고, 김유식 대표도 온갖 마음고생만 하였습니다. 어느날은 해외 출장 중에 한국에 있는 저에게 메신져로 그냥 죽어버리고 싶다고까지 하였습니다. ㈜아이씨코퍼레이션을 디시인사이드가 인수하면서 오히려 저희와는 상관 없는 사람들이 돈을 벌었습니다. 그들은 공공연하게 그걸 떠들고 다녔으며, 이번 검찰 조사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그들은 오히려 자기네들은 처벌을 받을 것 같지 않다고 웃으면서 김유식 대표에게 전화를 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저는 피가 꺼꾸로 솟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김유식 대표는 디시인사이드라는 회사 하나 제대로 키워 볼려고 불철주야로 노력한 죄 밖에 없는데, 진짜 죄가 있다고 하면 잘 모르고 코스닥 상장사 인수해서 거기 대표로 가서 바지 사장 노릇한 것 밖에 없는데 왜 이런 고통을 그가 받아야 하는 건지 정말 억울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2007년 디시인사이드의 최대주주는 석00과 ㈜퓨000라는 법인이였습니다. 석00은 ㈜아이씨코퍼레이션의 부사장이기도 하였으며 ㈜아이피코퍼레이션의 각자 대표 중 한명이었던 김00과는 절친한 사이로 후일 김00과 석00은 동서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퓨000는 김유식 대표와 일면식도 없는 회사로, 김현진과 석상근은 항상 ㈜퓨000는 자기네들이 맘대로 움직일 수 있는 곳이니 걱정할 것 전혀 없다고 얘기하여 실지로도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디시인사이드의 최대 주주는 두 명이었지만 실지로 석00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지분구조였습니다. 디시인사이드가 ㈜아이씨코포레이션의 대주주이고 김유식 대표가 디시인사이드와 ㈜아이씨코퍼레이션의 대표이사이기는 했지만 이러한 지분 구조에서 김유식 대표가 자기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습니다. 더욱이 김00과 석00도 향후 디시인사이드를 ㈜아이씨코퍼레이션 혹은 다른 상장사를 통해 우회상장을 시켜주겠다고 해서 디시인사이드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김유식 대표는 그들의 얘기를 들어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유식 사장이 그들의 요구를 거절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었지만, 약 10여년을 일궈온 디시인사이드와 디시인사이드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직원들을 위해 어떻게든 디시인사이드를 살려보려고 최선을 다하다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이 김유식 사장의 죄라면 죄일 것입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김유식 대표는 한국 인터넷에 있어서 디시인사이드라는 큰 발자취를 남긴 사람입니다. 네티즌들도 그를 김유식 대장이라고 부르면서 교감을 나누고 있습니다. 만약 김유식 대표가 사리사욕에 휩싸였던 사람이라고 하면 결코 현재와 같은 디시인사이드를 만들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만약 지은 죄가 있다면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법을 잘 모르지만 예전에 들었던 얘기로 법이라는 것이 열명의 죄인을 처벌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라도 무고한 희생자가 나오면 안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하였습니다. 부디 판사님의 현명한 판단으로 무고한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재판하여 주기기를 진심으로 부탁 드립니다.
1990년쯤 당시 PC통신이던 케텔(지금의 파란)에서 만났다. 지금도 그대로 쓰고 있는 아이디, pctools와 yusik00(김유식 아이디)를 가진 네티즌으로 만났다.
요즘 디시인사이드의 김유식 사장이 70억 원 횡령에 대한 공범이라고 불구속 기소되고 나서 디시인사이드의 신화가 금가고 있는 것에 대해 많은 글들을 보게 된다. 재빨랐고 날씬했고 푸르던 시절에 만난 내 주변 사람들 중에 아마 가장 친근한 이미지로 성공한 사람이 디시인사이드의 김유식일 것이다. 국내에서 가장 굵직한 사건과 문화를 만들어낸 웹사이트의 운영자로 많은 일화를 생산한 곳이다.
그런데 며칠 전 보도를 보니 70억 원을 횡령했는데도 불구속이란다. 7천만 원을 횡령해도 당장 오랏줄에 채워 철장 안에 법무부 도장이 찍힌 담요를 덮어주는 판에, 70억 원을 횡령했는데도 불구속이라니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
인터넷을 다니면서 김유식에 대한 글들을 읽어보니 디시인사이드의 김유식은 천하의 몹쓸 놈이 되어버렸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김유식에 대한 이야기는 살을 더하고 부풀려져 퍼져나간다. 왜 그럴까. 김유식과 네티즌으로 형, 동생 하는 사이로 20년을 지낸 사람으로 잘못된 헛소문들을 밝힌다.
- 수억 원짜리 외제차를 타고 다닌다는 소문.
김유식이 회삿돈을 빼돌려서 벤틀리나 포르쉐를 타고 다닌다는 소문까지 있다. 사실 김유식은 자신의 아버지 명의로 된 중고가격 200만 원짜리, 딱 10년 된 차가 있기는 하다. CD 플레이어 망가지고 뒷좌석 유리창이 내려오지 않는 차다. 수리비가 비싸다고 그냥 타고 다닌 지 5년 정도 됐다. 10년 전에는 크레도스를 타고 다녔고, 20대 중반 시절에는 한 번 feel 받으면 서울에서 부산까지도 간다고 자랑했던 현대 스텔라였다. 김유식이 타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는 페라리, 벤틀리, 렉서스 같은 외제차를 다 합치면 장안평 중고매매상을 해도 수십억을 벌고도 남을 지경이다. 하도 소문이 돌아 디시에 있던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디시인사이드에는 업무용 차량은커녕 보통 일반적으로 있을 법도 한, 법인 소유차도, 법인 리스차도 없었다. 디시인사이드에 보면 지하철에서 김유식을 보았다는 인증 사진이 가끔씩 올라온다. 실제로 김유식은 상당히 검소하고 기기 같은 것에 대한 욕심이 없다. 노트북인사이드가 한참 잘 나갈 때도, 디시인사이드가 한참 잘나갈 때도 쓰는 디카 하나 없었고, 노트북이라고 가끔씩 구경해도 거의 코프로세서 없는 인텔 386 수준의 컴팩 노트북 같은 거였다.
- 김유식이 야동을 팔아 회사를 세웠다?
김유식이 야동을 팔아 디시인사이드를 세웠다는 소문은 10년 전부터 꾸준하게 퍼지고 있다. 관련 내용은 게시판이나 블로그에서 수없이 볼 수 있다. 이젠 아예 굳혀져서 김유식은 김본좌를 가르쳤던 야동장사꾼처럼 소문이 돌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김유식은 15년 전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구매대행을 통해 일본의 CD나 LD, 게임, 컴퓨터 등을 주문 받아 판매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1년에 10억 원 가까이 매출을 올렸다고 했다. 그 10억 원 되는 매출 중에서 1996년에 검찰이 음란물로(야동이 아니다) 무리하게 잡아들였던 것이 “수병위인풍첩”이라는 LD 한 장이다. 국내에서는 “무사쥬베이”라는 이름으로 1998년에 국내에서 정식 개봉도 했다. 요즘도 케이블텔레비전에서 자주 틀어주는 이 애니메이션이 야동으로 둔갑하여 매도당하고 있다. 디시인사이드도 야동팔아 세운 곳이 아니다. 파란하고 벤처캐피탈에서 각각 5억 원씩 투자를 받아 설립했다.
- 김유식은 리틀 조갑제고, 뉴라이트 단체 회원이다?
김유식의 정치성향이 보수적이긴 하다. 이미 알려진 것처럼 김유식은 손학규 후보를 좋아해서 지지했었다. 이후 김유식은 더욱 꼴통보수로 왜곡되어버렸다. 한 언론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만은 조갑제 씨의 생각과 비슷하다는 말이 왜곡되어 리틀조갑제가 되어 버렸고, 손학규 씨의 지지를 한 것 때문에 골수 한나라 당원에 뉴라이트 단체 회원까지라는 소문이 나 버렸다. 김유식은 한나라 당원도 아니고 뉴라이트 회원도 아니다. 김유식은 자신의 생각이나 사상을 숨기지 않는다. 1996년 강릉 북한잠수함 사건 때도 천편일률적인 보도내용을 의심하는 글을 하이텔에 올렸다가 보안수사대에 국가보안법으로 잡혀서 옥인동 대공분실에서 개고생을 하다 나온 적이 있다. 이런 고집은 회원 수가 돈이던 시절에도 회원가입하지 않아도 글 쓰는 커뮤니티를 운영했고, 그 많은 압력이 들어와도 1급수도, 3급수도 노는 곳을 만든다는 인터넷 사이트 운영 철학을 끝까지 주장해서 성공한 고집과도 비슷하다.
- 김유식이 게시판을 다니면서 욕한다?
인터넷 상에는 김유식이, “디시 어떤 애가 만들었나요?” 라는 질문에 “나다 X병신아” 라고 하는 댓글을 달았다는 캡처 게시물을 떠돌고 있다. 그래서 내가 김유식에게, 웹사이트 운영자가 무슨 몰상식한 짓이냐고 했더니 자신은 그런 욕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디시인사이드를 이용하는 이용자들이 재미를 위해서 합성 한 것이 김유식을 악의적으로 비난하는데 이용되고 있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유식대장처럼 유명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게시물에 유식대장이, “횡령을 하세요” 라는 단 댓글이 있었는데 앞뒤 내용을 다 자르고 그 자조적인 표현을 한 댓글을 “김유식 횡령 인정”이라는 내용으로 보도까지 한 몰상식한 언론도 있었다. 재판을 앞둔 실제 횡령범이라면 그런 식으로 댓글을 달 이유가 없다.
- 김유식이 회사 돈 70억 원을 횡령했다?
김유식이 불구속 되었다는 보도가 나서 아주 오랫만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평소 깊은 이야기를 잘 안하던 김유식이 얼마나 억울한지 답답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꿋꿋하게 자신의 소신대로 하던 것이 많이 눌렸다는 느낌이고, 약간 심각한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혹시라도 저러다가 자살하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의기소침해 했다.
김유식 횡령 관련 기사를 찾아 읽다보니 이런 내용이 눈에 띄었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가 개인적으로 돈을 가로챈 것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횡령에 대한 공범으로 기소했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D사 대표 김씨가 횡령 등으로 취득한 이득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해 불구속 기소했다"며 "실제 이득은 도주한 김씨와 석씨가 챙긴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김유식의 70억 원 횡령에 대한 내용은 법원의 판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디시인사이드가 수백억 원의 사이트 가치를 가지고 인수나 합병에 대해 논의될 때, 주변에 달라붙던 사기꾼들의 이야기는 직접 본 사례만 해도 꽤 된다. 야후의 서버에 빌붙어서 운영하던 때에도 투자유치해 준다고 접근했던 사기꾼들 중에 두 명은 직접 본적도 있다.
김유식은 인터넷 커뮤니티의 속성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지 재무전문가가 아니다. 이번 사건에도 주범이라는 두 명은 해외로 도피했고 어디 가지 않는 70억 원 횡령한 대표라는 사람은 구속도 아닌 불구속이라는 데서 김유식의 말을 잇지 못하는 답답함과 자괴감을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 pctools 김현국은 왜 김유식을 옹호할까.
디시인사이드는 지금도 대한민국 인터넷의 1급수와 3급수를 아우르는 커뮤니티로 대단하지만 과거 수백억 원의 가치가 넘는 회사를 가졌을 때도 김유식은 주변사람에게 절대 거만하지 않았다. 잘난 척하고 뭔가 아는 것처럼 행동하지도 않았다. 매출이 100억 원을 넘어도 늘 소박했고 적어도 욕심이나 소비나 사치를, 나는 알고지낸 20년 동안 김유식에게서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2년 전 중국 베이징에 출장 차 갔을 때, 디시인사이드 북경사무소에 와 있던 김유식과 연락이 되어 술이 눈알까지 차도록 마신 적이 있었다. 이때 김유식은 폐인과 찌질이, 온갖 고수들이 다 오는 디시인사이드를 넘어 진짜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쓰는 정겨운 인터넷을 포탈을 만들고 싶다는 진지한 포부와 방법, 생각을 이야기 했다. 나이 어린 후배에게서 감동과 존경을 느꼈을 때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성공시켜 고급문화와 저급문화가 함께 나오는 곳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분명하게 보았으나, 뒷돈장난으로 한 탕에 크게 개인의 부를 잡으려는 김유식은 20년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나는 김유식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20년 동안 보아왔기에 지금처럼 그대로 말할 수 있다. 김유식은 난잡하지도 추잡하지도 않은 자신의 소신을 밀고 가는 네티즌 출신의 사업가일뿐이다.
저는 현재 (주)디시인사이드에서 재직 중인 김근태라고 합니다. 김유식 대표와는 12년째 알고 지낸 사이입니다. 처음 몇 년은 동호회에서 알게 된 친한 형으로서, 그리고 이후에는 회사의 대표와 직원 사이로서 알고 지냈습니다. 오랫동안 김유식 대표의 공적인 모습과 사적인 모습 모두를 봐왔기에 누구보다도 그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시나 제가 김유식 대표가 일하는 회사의 직원 신분이기에 탄원서의 의도를 다소 오해하실 수도 있지 않나 싶어 말씀드리지만, 저는 본 탄원서를 제가 일하는 회사의 사장을 위해서가 아닌, 어디까지나 제가 잘 알고 지낸 김유식이란 한 개인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쓰고 있습니다. 김유식 대표가 받고 있는 많은 오해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를 존경하는 한 사람으로서 본 탄원서를 쓸 수밖에 없었음을 부디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불필요한 서론이 길지만 좀 더 말씀드리면 저는 김유식 대표와 대단히 다른 사상과 사고를 가진 사람입니다. 비교적 보수적인 사회적 관점을 가진 김유식 대표와는 달리 저는 다분히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고, 회사의 구성원으로서도 김유식 대표가 경영자로서 보여온 여러 결정들에 대해 많이 반대 의견을 표해오곤 했습니다.
이렇듯 저는 김유식 대표와 대단히 다른 생각, 사상을 갖고 있고 실제로도 여러 번 의견이 부딪혀 왔음에도 그 아래서 오랫동안 일해 왔습니다. 김유식 대표를 대단히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김유식 대표를 신뢰할 수 있었던 원천은 깨끗한 도덕성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진취적인 사고나 풍부한 창조성도 분명 인정할만한 점이지만, 무엇보다 도덕성이라는 점에서 그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는 제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깨끗한 사람 중 한명입니다. 진부한 말이 될 수도 있지만 항상 허례허식 없이 소박한 모습을 보이는 그의 모습은 주위 사람들에게도 매우 귀감이 되어 왔습니다.
수많은 네티즌들에게 '유식대장'이라는 애칭으로까지 불리는, 영향력 있는 인터넷 사이트의 대표가 항상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는 모습은, 보이는 모습이 중요한 우리 사회에서 다소 신기하게 생각될 수도 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그의 행동은 네티즌들에 의해 사진이 촬영되어 여러 번 인터넷에 올라오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직원들과 간식으로 떡볶이를 사먹고, 회식으로 삼겹살에 소주를 먹을 때가 가장 즐겁고 편하다는 그의 말을 저는 여러 번 들어왔습니다. 왜 자가용이나 택시를 잘 타고 다니지 않느냐는 어느 직원의 물음에 '그럴 돈이 있으면 불우이웃이나 돕고 말지'라고 대답하는 걸 들었던 적도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본 모습을 가식적인 다른 모습으로 포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며칠, 몇 달, 길면 1, 2년씩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게 가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십년씩 그런 모습을 한결같이 보인다면 그게 그 사람의 원래 모습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아는 한 김유식 대표의 머릿속에는 딱 두 가지만이 있습니다. 한국 인터넷의 발전과 디시인사이드라는 회사의 발전입니다. 그의 삶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이 두 가지는 우선했습니다. 여기에 개인의 사리사욕이 들어갈 자리는 없어 보입니다.
앞서 말한 두 가지 중 전자가 지나치게 거창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김유식 대표의 발자취를 생각하면 그것이 결코 과장이나 한 개인의 망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적어도 그는 '한국 인터넷 발전에 공헌'을 했다는 말을 써도 과장되지 않은 사람들 중에 한 명입니다.
그가 했던 잘못이라면, 재정적으로 힘들어진 회사를 위해, 불가피하게 투자를 받는 선택을 했던 것입니다. 그 선택이 흔히 기업사냥꾼이라고 할 수도 있는 사람들의 함정에 가까운 것이었음을 그는 몰랐었습니다. 무지도 때로는 잘못일 수 있다는 말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가 몰라서 당했지만 그건 그의 책임이라고 냉정하게 말할 수도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분명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코 개인의 이익을 위한 행동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만은 저는 분명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IT is life'
디시인사이드에 접속하면 가장 먼저 보이는 문구입니다. 이 말은 김유식 대표 자신의 삶에 걸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를 접해왔으며 누구보다도 빨리 인터넷을 시작했고, 실제로 자신이 만든 웹사이트로 독특한 한국의 인터넷 문화를 이끌어왔던 그입니다. 그는 진심으로 인터넷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남은 평생도 거기에 바칠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네티즌들에게 '유식대장'이라고 불리는 그가, 지금은 한없이 괴로워하고 자괴감에 빠져 있습니다.
제가 그를 봐온 12년 동안 지금처럼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는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낙관적인 모습을 잃지 않았고 회사 직원들을 때로는 가족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이끌어왔습니다.
하지만 요즘 김유식 대표가 보이는 모습은 저를 매우 당황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속앓이를 하더라도 겉으로는 늘 밝은 모습이던 그가 요즘처럼 힘들고 우울해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습니다.
김유식 대표가 ㈜아이씨코퍼레이션의 공동 대표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 때문이더라도 법률상 그가 결과적으로 어떤 잘못을 저지른 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잘못된 행동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전직 대통령까지 금전과 관련된 일로 소환되는 상황에 '그는 믿을만한 사람입니다.'라는 말 한마디가 과연 얼마나 신뢰를 줄 수 있을지 저도 걱정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도덕적인 면에서 대단히 신뢰할만한 사람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35년간 공직에 몸담다 얼마 전 정년퇴직을 하셨습니다. 명절 때 작은 선물 하나도 마다하실 만큼 깨끗한 공직 생활을 수십 년간 해 오셨던 분이며, 아들로서 저는 아버지를 매우 존경합니다. 하지만 저는 결코 김유식 대표의 도덕성을 저희 아버지 보다 아래로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김유식 대표를 저희 아버지만큼이나 존경합니다. 아무런 과장도 없는 사실이며, 김유식 대표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만한 얘기일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을 완벽히 알 수는 없지만 저는 그를 가까이서 오랫동안 봐왔고 그의 대부분을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는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저나 다른 이들에게 보여준 신뢰라는 탑은 십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무너지지 않고 계속 높아져만 갔습니다. 그리고 제 앞에 서 있는 그 탑은 여전히 그 어느 빌딩이나 산 보다 높게 서 있습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만약 김유식 대표가 저지른 잘못이 있다면 그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혹여나 그가 다른 사람의 잘못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좀 더 살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부디 그에게 최대한의 선처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존경하는 재판관님,
저는 피고인 김유식씨를 사장님으로 모시며 8년간 직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단지 직원으로서가 아니라 8년간 사장님의 모습을 지켜본 입장에서 사장님의 억울함을 알려야겠기에 이렇게 탄원서를 올립니다.
피고인은 2006년 11월 회사를 좀더 원활하게 운영하기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IC코퍼레이션 인수하였습니다. 당시 직원들에게는 이 인수건이 상당히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동안 자금부족으로 추진하지 못했던 여러 사업과 열악했던 처우 개선에 대한 희망적인 내용이 전달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IC코퍼레이션과의 관계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문제가 불거진 것 같습니다. IC코퍼레이션과 같은 사무실을 쓰실 때 몇몇 직원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는 이런 얘기도 있었습니다. 김유식 사장님은 한 달에 법인카드를 얼마 쓰지도 않는데, 당시 IC코퍼레이션 공동대표였던 김모 사장은 천 만원 이상을 쓰더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평소에도 알뜰함을 강조하시는 사장님께서는 회식을 하더라도 저렴한 곳에서 마음껏 먹도록 해주십니다. 이에 대해 직원들이 가지는 불만도 없었습니다. 사장님을 따라 직원들도 모두 검소함을 생활화하고 있습니다. 검소함을 몸소 실천하시는 사장님의 모습은 저희 유저들에게도 종종 모습이 비추어 지하철에서 사장님을 봤다는 사람도 있고, 사진도 올라오곤 합니다. 70억을 횡령하신 분이 아직도 이렇게 지하철을 타고 다니실까 의문이 듭니다.
또한 사장님은 돈 관리에 대해서는 철저하십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2007년 태국으로 업무차 들렀을 때 영수증을 정리하지 않아 혼이 난 적이 있습니다. 10원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게 정리를 하라고 하시는 분입니다. 2007년 종무식 때는 2차로 갔던 음식점에서 마지막에 계산할 때 주인 아주머니가 바가지를 씌우기 위해 더 추가한 메뉴를 찾아낼 정도로 일 원 한 푼도 허투로 쓰지 않고 법인 카드로 내는 회식비도 개인 돈처럼 아끼는 분입니다.
또한 사장님은 사람을 잘 믿으시는 편입니다. 예전부터 사장님은 이런 성격 때문에 친구에게 배신도 당한 적이 있고, 돈을 떼인 적도 있습니다. IC코퍼레이션 사람들의 경우 물론 회사일로 엮였기 때문에 잘 따져보셨겠지만, 인수건은 처음이라 사람만 믿고 체크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동안 탄원서를 써본 적이 없지만 8년간 모셨던 사장님이 70억 횡령범으로 낙인찍히는 모습을 간과할 수 없어 이렇게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회사의 대표로서 공동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개인의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단지 저만이 아니라 사장님을 알고 있는 제 주변 사람들도 모두 인정하는 바입니다. 저를 포함한 직원들 모두 사장님께서 빨리 정상업무에 복귀해 회사 발전을 위해 일해주실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관님,
부디 사장님께서 이런 결과로 치닫게 되기까지의 상황을 참작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지금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서울구치소에서 수형생활을 하며 항소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구속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에 기회가 된다면 말씀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다른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10월 6일은 디시인사이드가 생겨난 지 10주년이 되던 날이었습니다. 파란의 전신인 한국통신하이텔의 콘텐츠 제공으로 처음 시작한 디시인사이드는 우연한 기회에 만들어진 사이트입니다. '90년대 중반 노트북컴퓨터 동호회에서 시삽을 했었던 저는 '99년 여름 한 하이텔 담당자의 도움으로 월 100만원씩 받기로 하고 노트북에 대한 정보 제공사이트를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이때 담당자는 또 다른 정보 제공 할만한 아이템이 없느냐고 물었고 저는 잠시 생각하다가 디지털카메라에 대한 것이 좋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두어 달 정도 마포구 대흥동의 한 상가에서 야전침대를 놓고 노트북과 디지털카메라에 대한 사양표 정리를 마치고 첫 서비스를 개시하던 날이 생각납니다. 고정 IP 주소가 없어 근처 PC방에서 업로드를 했던 일, 서비스개시 두시간만에 첫 질문이 올라와 기쁨에 넘쳐 답변게시물을 달던 일 등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서비스개시하고 얼마 안 되어 보증금 오백만 원에 월 오십만 원씩 내기로 하고 아현동의 다 쓰러져가는 아파트로 옮길 수 있었고 적으나마 몇 명의 직원들을 채용하였습니다. 그 중의 한 직원은 지금 저의 아내가 되어있고 당시 같이 일했던 직원들도 아직 디시인사이드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지난 10년 동안 디시인사이드에서는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회사의 위치는 아현동에서 구로공단역으로, 문래동을 거쳤다가 논현동에서 7년을 있었고 지금은 신도림 테크노마트로 이전해 있습니다. 100MB의 하드디스크를 쓰던 웹호스팅 시절을 지나 한 대, 두 대 서버를 구매하게 되고 어느덧 200여대의 서버로도 부족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지난 3월에 있었던 DDOS 공격으로 일부 트래픽을 잃기도 했지만 아직도 서버속도는 상당히 느린 상태입니다.
비회원제로 아무나 들어와서 원하는 글을 쓰게 하자는 초기의 운영방식은 많은 이용자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정부의 제한적 본인확인제 정책으로 로그인 또는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만 아직도 비회원제에 대한 제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2002년 월드컵을 전후로 디시인사이드의 방문자수와 페이지뷰가 급격히 늘었고 개벽이, 개죽이 등 각종 "합성필수요소"들의 등장과 독특한 리플문화로 인해 이른바 "아햏햏" 문화의 생성과 "디시폐인"들이 생기면서 디시인사이드는 나름대로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습니다. 넘쳐나는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해 하나포스와 동아닷컴의 신세를 진적도 있고, 3년간 야후코리아의 서버를 빌려 쓴 적도 있습니다. 5억원으로 시작했던 자본금은 30억원으로 늘었고 적으나마 5년 연속으로 순이익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여러 이용자들과 더불어 훌륭한 직원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저에게는 큰 행운이었습니다. 적은 임금과 열악한 근무환경에서도 묵묵히 맡은바 업무를 충실히 해주었던 박주돈 부사장 외 여러 직원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지난 10년간 디시인사이드에서는 서울과 북경에서 삼백여명의 직원들이 거쳐 갔습니다. 경력을 쌓아 전직한 직원들도 있고, 결혼 후 출산하여 가정주부가 된 직원들도 있습니다.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어 직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협력업체분들께도 인사의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저와 디시인사이드를 도와주셨던 많은 협력업체 여러분들. 일일이 찾아뵙지 못하고 인사 못 드리는 점을 너그럽게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찾아뵙고 인사 올리겠습니다.
한 가지 제가 진정으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금까지 디시인사이드는 한번도 서버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빌려 쓰기도 하고 투자를 해주겠다는 사기꾼들에게 속아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디시인사이드는 상태가 썩 좋지는 않습니다만 여러분들의 꾸준한 사랑 바라겠습니다.
디시인사이드 이용자 여러분!
저는 지난 10년간의 주식회사 디시인사이드 대표의 자리에서 물러나 이제 여러분의 곁을 떠나야합니다. 그러나 꼭 언젠가 여러분들과 다시 함께할 날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지난 10년간 여러분들의 사랑으로 저는 디시인사이드의 대표자로서 결코 잊을 수 없는 30대를 보냈습니다.
디시인사이드를 방문해 주셨던 여러분들, 협력업체분들, 그리고 직원들 모두에게(개죽이를 포함하여) 다시금 깊은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키보드가 아닌 편지지에 쓰는 것이라 두서가 없는 점 이해하여 주시고 모든 이용자 여러분 항상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같은 시대를 보내는 네티즌이어서 고마웠고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